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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교육

난득호도 (難得糊塗)

by 루카와 2009. 10. 30.

공손연의 반란을 평정한 사마의는 어린 위주(魏主) 조방을 보필하던 대장군 조상이 권력을 잡고 세력이 점점 커지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병을 핑계로 사마소, 사마사와 함께 벼슬을 버리고 물러났다. 그러나 조상은 사마의가 두려워 사람을 보내 병문안하는 체 하면서 그 허실을 살펴보게 했다. 조상의 의도를 알아 챈 사마의는 병이 깊어 다 죽어가는 행세를 했다. 청주자사로 부임한 이승으로부터 사마의가 정말로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조상은 사마의를 경계대상에서 제외하고 말았다. 사마의는 차근차근 후일을 도모하여 마침내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총명하기 어렵고 바보짓하기도 어려운데 총명하면서도 바보가 되기는 더욱 어렵다.(難得糊塗)"

청나라 말기 양주팔괴(揚州八怪) 가운데 으뜸으로 추앙받는 판교(板橋) 정 섭(鄭 燮, 1693~1765)이 남긴 말이다. 호도(糊塗)는 선천적으로 어수룩한 것이 아니라 짐짓 어수룩하게 보이도록 가장한 것이다. 어수룩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몸에 밴 것이다. 그래야 남들이 긴장감과 경계심을 갖지 않고 편하게 다가오게 된다. 어찌보면 상대를 기만하는 행동일 수 있으나 멀리 내다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고도의 처세술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색깔을 감추고 적당히 시류(時流)에 영합하면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생존을 위한 고도의 위장술일 수도 있고 상대방을 안심시켜 공격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전술일 수 있다.

정판교는 시(詩), 서(書), 화(畵)에 삼절(三絶)을 이루어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그림에서는 묵죽(墨竹)의 귀재로 통했다. 또, 서예계에서도 아주 유명한 인물로 그의 필체를 두고 스스로는 육푼반서(六分半書)라고 불렀고 다른 사람들은 난석포가체(亂石鋪街體)라고 불렀다. 그는 많은 글과 그림을 남겼으며 품격이 고상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는데, 그의 글이나 그림을 받은 사람들은 마치 보물을 얻기나 한 듯 기뻐했다고 한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하여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에 나아갔다. 관직에 오른 그는 강직하고 정의로운 관리였으며 평소 빈곤하게 살면서도 권력자들에게 아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마침내 권력가들의 미움을 사게 되고 마침내 관직에서 쫓겨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총명하기도 어렵고 멍청하기도 어렵지만, 총명한 사람이 멍청한 척 하기란 더욱 어렵다"는 뜻으로 남긴 그의 이 말은 가끔은 바보인 척, 멍청한 척, 모자란 척 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일찍이 노자는 “뛰어난 기교는 졸렬해 보이고 훌륭한 말일수록 어눌하게 들린다.(大巧若拙 大辯若訥)”라고 했다. 또, 군자는 “덕이 성한데 용모를 보면 어리석은 듯하다.(君子盛德 容貌若愚)”라고 했다.

송나라의 문호 소동파(蘇東坡)는 “대단히 용감한 사람은 오히려 겁먹은 듯하고, 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오히려 어수룩해 보이며, 지극히 존귀한 사람은 헌면(軒冕, 초헌과 면류관)이 없어도 존귀하게 보이며, 지극히 인자한 사람은 양생하지 않아도 장수한다.”라고 했다. “참된 빛은 번쩍이지 않고 큰 지혜는 멍청한 것처럼 보인다.(眞光不輝 大智若愚)”라는 말이 바로 그러한 경우일 것이다.

정판교가 남긴 이 말은 오늘날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활 속의 격언이 되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자기 집 거실이나 서재, 현관 그리고 사무실에 이 글귀가 적힌 편액을 즐겨 걸어놓는다. 그의 바보철학이 중국인들의 생활철학이자 인생철학의 하나가 된 것이다.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이 글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한 걸음 물러남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정판교가 말했던 것처럼 훗날 저절로 찾아오는 복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돌아보니 모두가 잘난 사람 천지다. 저마다 다 잘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TV를 보는 것도 짜증스럽고 신문을 보기도 식상하다. 저자거리 앞에서 날뛰는 이들은 모리배가 대부분이요 정작 현자(賢者)들은 세상일에 무관심한 척 냇가에 발 담그고 앉아 귀와 눈을 씻고 있다. 최근 들어 일각에서는 정판교가 남긴 이 글귀를 여러 형태의 선물로 만들어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고도의 처세술이 필요한 때라서 그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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