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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야구

기적같던 국보급 투수 선동렬

by 루카와 2009. 10. 30.

선동열 

출생  1963년 1월 10일 (광주광역시)
신체  184cm, 87kg
혈액형  O형
소속  삼성 라이온즈 (감독)
가족  1남 1녀
데뷔  1985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
취미  여행, 낚시
별명  국보급 투수, 무등산 폭격기, 나고야의 태양
종교 천주교

<학력>
고려대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무등중학교
송정초등학교

한 야구선수가 있었다.
 
1985년부터 1995년까지 단 11년간 한국 프로야구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146승 132세이브를 올렸고 통산 평균자책점은 단 1.20 에 불과하다. 28년간의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단 4번밖에 기록되지 않은 3경기 연속 완봉승과 노히트노런 기록 등 구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그가 한국 야구사에 남긴 족적은 그저 그런 투수들이 감히 넘볼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 그가 있는 동안 해태 타이거즈는 6번의 우승트로피를 차지하며 '해태왕조'라 불리며 전국의 다른 구단 야구팬들에게 쓰디쓴 패배의 쓴맛을 안겨주었다. 그는 무등산 폭격기였으며 1996년 이후에는 나고야의 태양이 되어 주니치의 수호신이 된다.
 
그는 다름 아닌 선동렬이다.

이미 광주일고 시절부터 초 고교급 투수로 명성을 날렸고
특히나 서울에서 열렸던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그는 선발투수로
미국, 대만, 일본전에 나서 그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건국
이례 가장 큰 쾌감을 국민들에게 선사했다. 

그 이후 그는 경악스러운 기록을 남기며 한구프로야구를 평정하기 시작한다.
 
프로 2년차, 24승에 자책점 0.98 이라는 말도 안되는 활약을 하며 타이거즈의 두번쨰 우승을 일구어 낸다. 이후로 10년간은 해태왕조 시절이었고 어느 누구도 그들의 아성을 넘보지 못하였다. 그가 선발에서 마무리로 보직이 전환된 후 상대팀은 언제나 그가 마운드에 오르기 전에 경기를 잡아가려고 애를 쓰곤했다. 그 당시 그의 존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팀을 얼어붙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너무나도 유명한 선동렬과 허재의 일화>

야구에서는 선동렬이, 농구에서는 허재가 술고래로 유명했던 시절이 있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서 형동생 하며 술을 마시다가 새벽 4시에 도저히 더는 못 마시겠어서 허감독이 자신의 음주역사 최초로 먼저 도망을 쳤단다. 다음날이 경기였는데, 허재는 술이 너무 안깨서 "30점 넘게 넣으면 빼주세요" 라고 감독에게 부탁해서, 30점을 순식간에 몰아넣고 벤치에서 쉬면서 '내일 신문에는 내가 1면에 나겠지' 라고 생각 했는데,

다음날... 스포츠신문 1면엔... [선동렬 완봉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