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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야구

전설속의 바람의 아들 이종범

by 루카와 2009. 10. 30.

이종범

출생 1970년 8월 15일 (광주광역시)
신체 177cm, 80kg
혈액형 O형
소속팀 기아 타이거즈 외야수
데뷔 1993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
별명 종범신, 바람의 아들, 종범성
취미 음악감상

특기 당구

1993년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 해태 시절인 1994년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상, 1993년과 1997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였다.

20-20 클럽에 가까이 도달했던 시즌(혹은 20-20 클럽 및 30-30 클럽 달성을 했던 시즌)이 8번이나 될 정도로 그는 한국 프로 야구의 간판 타자이다. 거포가 가지는 매력과는 달리 경기 자체를 지배하던 대한민국 야구의 유일무이한 스타일의 톱타자 겸 야수(유격수)였다. 건국대학교 졸업 후 1993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뛰어난 실력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과 신인왕을 다투었으나 수상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 해 한국 시리즈에서 독보적인 활약으로 한국 시리즈 MVP에 오른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4년 시즌은 그의 선수 시절 가장 절정에 달한 시즌으로 그는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단일 시즌 최다 안타 (196안타), 0.393 (120경기 이상 최고 타율), 단일 시즌 최다 도루 (84도루)에 19홈런을 기록하는 엄청난 활약을 하였다. 후일 200안타와 4할, 그리고 20-80 클럽 개설까지 모두 노렸던 것이 무릿수를 두었던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후 1993년 첫 우승과는 달리, 당시 '무등산 폭격기'로 불리던 국보 투수 선동렬이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가고 없는 해태 타이거즈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1996 시즌, 1997 시즌을 연속으로 우승하는 데 기여하였다. 유격수 시절 수비 폭이 매우 넓어서 클린 히트가 될 수 있는 타구를 따라 잡아 건드리는 것이 본의 아니게 에러가 된 것이 많았으며, 이를 본 당시 캐스터들이 '이종범 에러'라는 고유 명사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격수로서 최상급의 송구 능력을 보유하여 2·3루간 빠지는 안타성 땅볼 타구를 외야 잔디까지 쫓아가서 잡은 다음 투수 못지 않은 강속구로 1루에 송구하여 타자 주자를 아웃시키는 명장면을 연출해 내기도 할만큼 그의 수비 능력은 뛰어났다.

19홈런 84도루, 30홈런 64도루(유일무이한 30-60 클럽개설), 25홈런 57도루, 20홈런 50도루, 16홈런 73도루, 18홈런 35도루, 17홈런 42도루, 그 외에도 16홈런 32도루 (방위복무로 동계훈련 못한 상태서 시즌반만 정확히 뛴 기록) 시즌까지, 홈런 한 두 개 차로 20-20을 놓친 해가 지금보다 적은 과거의 게임수에서 5시즌이나 되었다. 단일 경기 최다도루 6도루와, 선두 타자 홈런기록, 선두 타자 초구 홈런기록도 2위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문기자들은 전성기 그의 타격 성적을 이야기할때, 이종범의 수비 포지션가 유격수였다는 것은 차라리 넌센스에 가깝다고 한다. 역대 유격수 포지션을 맡은 선수가 150개 이상의 안타를 때려 내고, 0.580 이상의 장타율과 1점대가 넘는 OPS를 기록한 경우는 1994년의 이종범과 1997년의 이종범 단 두 번뿐이다. 당시 김응룡 감독은 이종범은 팀 전력의 50% 이상이다'라는 어록을 남겼고, 10승 투수 3명 이상의 전력이란 평을 들었다.


그의 전설과도 같은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종범神..